북망산을 지키는 외로운 새

한국인이 제일 좋아한다는 시 중의 하나가 김소월의 산유화(山有花)이다. 이시는 매우 쉬운 듯한데, 이 시에 사용된 명사 어휘만 보아도 산, 꽃, 여름, 갈(가을), 새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꽃이 피고 진다는 정도의 느낌에서 출발한 이 시는 왜 한국인들의 애송시가 되었을까. 우선 김소월의 시 산유화를 읽어보기로 하자.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요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꽃이 피고 지는 배경에 선 화자는 왜 슬픈가, 필자는 산유화 속의 ‘꽃’을 생명력으로 가득 찬 현실적인 꽃, 영원한 생명을 갈구하는 생명 배태로서의 꽃이 아니라 가화(假花)로 해석해본다. 가화는 생명력이 없는 꽃이며 생명을 위장한 죽은 꽃이다. 무당들의 복색 또는 상여가 요란한 가화로 치장되는 이유는 망자(亡子)의 생명력이 이미 소멸되었음을 가장 강렬하게 시사하는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가화야말로 죽은 자의 상징이다.

이런 맥락에서, 위 시의 ‘꽃’을 가화로 본다면, 산유화 속에 담긴 슬픔이 조금씩 이해된다. 1~2연에서 화자는 꽃으로 치장된 상여를 바라본다. 오늘도 산에는 상여가 들어섰으며, 상여는 오늘 뿐 아니라 ‘갈 봄 여름 없이’ 늘 산으로 올라온다. 이런 관점을 밀고 나가면, 이 시에서의 ‘산’도 북망산(北邙山)으로 해석될 수 있다. 죽은 자는 북망산에서 상여의 꽃으로 다시 피어나지만, 늘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는 것이다. 이 시의 가장 핵심적인 구절인 ‘저만치 혼자서’ 야말로 단독자로서 맞아야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이자 인간의 실존적 조건에 대한 표명이지 않은가.

다음의 3연에서 화자는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는 꽃을 이별하지 못해, 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러한 역설이야말로 죽은 자를 쉽게 보내지 못하는 산 자의 슬픔을 보여주는, 소월 특유의 방법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는 한국인의 장례 절차를 잘 압축하고 있다. 산에는 늘 가화로 치장한 상여들이 올라온다. 그러니까 산에는 늘 꽃이 피어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 꽃에는 가족이나 이웃이 없다. 그래서 그 꽃들은 늘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다. 산에서 사는 작은 새 한 마리가 그 꽃으로 치장된 무덤을 지키고 있다. 그 새는 죽은 자의 영혼이지 않을까? 그 새가 산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꽃이 좋아서라고 했다.

이제 죽은 자는 외롭지 않다. 새 한 마리가 자기 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죽은 자를 산에 묻고 돌아온 가족들에게 죽은 자는 잊어서는 안되는 귀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빨리 잊어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산 자는 삶 속에서 부지런히 살아야지 늘 죽은 자에 대한 슬픔에만 빠져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산 자는 죽은 자를 외면하고 자기 인생을 부지런히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의 삶이 너무 행복하면 죽은 자에 대한 대접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 경우, 산 자가 택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죽은 자로 저승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고 믿는 방법이다. 그것이 바로 화려하고 요란한 장례 절차인데, 장례가 장엄할수록 저승으로 건너간 영혼은 행복할 것임을 스스로 믿게 된다. 삶에서 죽음의 강으로 건너가는 절차인 천도제야말로 죽은 자를 위하는 절차인 듯 싶지만, 정작은 살아남아 있는 가족들을 위한 절차이기도 한 것이다.


저승은 아름다운 곳이어야 한다

기왕 김소월의 시를 읽었으니, 김소월의 시 중에서 엄마야 누나야라는 이름의 시 한편을 더 읽어보기로 하자.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 모랫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이 시는 엄마와 누나와 함께 금빛 모래 반짝이는 뜰, 뒷문 밖에서 갈잎의 노래가 들리는 그런 곳에서 살자고 노래한다. 엄마와 누나와 함께 강변에 가서 살자는 것, 이는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희망의 노래로 읽히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다. 어찌 보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네”라는 남진의 유행가요와도 흡사하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면 어느 누구도 이 시를 남진의 가요와도 같은 희망의 노래로 읽지는 않는다. 이 시에도 뭔지 설명하기 힘든 슬픔이 깔려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아마도 엄마와 누나는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시적 화자가 죽어 엄마와 누나와는 생을 달리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시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으며, 우리는 이러한 죽음의 정서를 자연스럽게 수용한다.

이 시에 대한 필자의 독법은 이러하다. 엄마와 누나가 비명에 갔다. 이 시를 노래하는 사람(시적 화자)은 엄마와 누나더러 미련을 버리고 빨리 이승을 떠나라고 말한다. 나도 엄마와 누나를 따라 곧 갈터이니 뒷문 밖에 갈잎소리가 들리는 저승의 그 아름다운 곳에 먼저 안착해 있으라고 말한다. 시적 화자가 연상하는 저승세계는 무척 아름다워야 한다. 그래야만 엄마와 누나가 행복할 테고, 그래야만 그들과 이별하는 시적 화자의 마음도 편하다. 죽은 자와 이별하는 시이기에 이 시는 슬프고 아름답다.

죽음을 처리하는 방식

침팬지를 관찰하던 동물학자가 새끼 침팬지가 죽었을 때, 엄마 친팬지가 취한 행동에 충격을 받는다. 엄마 침팬지는 새끼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죽은 시체를 며칠간이나 안고 지낸다. 시체가 썩기 시작하고 엄마 침팬지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침팬지는 상당히 높은 지능을 가진 동물로 알려졌지만 새끼를 잃은 슬픔을 처리할 어떠한 문화적인 방식도 접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침팬지는 새끼를 버려야만 할 때가 되었다는 논리적인 판단을 내린다.

침팬지는 장례절차를 모르지만, 새끼를 안고 아무도 보지 않는 밀림 속으로 사라진다.

한참 후에 다시 나타난 엄마 침팬지는 그제서야 새끼를 잃은 슬픔을 이겨내고 이상으로 복귀한다. 그 침팬지가 밀림 속에서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관찰되지 않았다. 그러나 미련 없이 죽은 자와 결별 하기 위해서는 산 자 나름의 시간과 절차가 필요한 것이다. 침팬지도 그렇게 행동한 게 아닐까.

일반적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은 이제 고인이 된 사람들에게 이중적인 감정, 즉 애증(애정과 증오)을 가진다고 한다. 고인은 이제 우리와 살 수 없는, 부패될 수 밖에 없는 물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고인은 얼마 전까지 나와 삶의 기쁨과 공감을 나누던 가족이자 친구였다.

죽은 자를 편안한 저승의 세계로 돌려보낼 때에는 이제 다시는 돌아와서는 안 된다는 약속까지 받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례가 엄숙하고 산 자가 행할 수 있는 최고의 대접이 되어야 한다. 죽은 자가 편안하게 저승으로 떠나야 이승에 살아남은 자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침팬지조차 그 장례의 의미를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다만 인간과 침팬지의 다른 점은 인간은 죽은 자를 처리할 수 잇는 고도의 문명적 약속, 즉 장례의식이 있다는 점이다.

장례의식이 고인을 위한 절차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살아남아 이승을 살아야 하는, 가족들을 위한 절차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