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돈 쌈짓돈처럼 쓰고 '먹 튀'…규제방법 없나

 

 

고객 돈을 물 쓰듯 쓰고, 급기야는 잠적하는 상조회사들이 늘면서 상조회원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 이러한 현실 탓에 상조업계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는 땅에 떨어져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뒤늦게 팔을 걷어붙였지만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먹 튀 상조업체 계속 늘어

재무상태 부실하고, 고객 돈 물쓰듯 써 국민적 지탄

 

서울에 사는 A씨는 지난해 8월 상조계약을 해약하려다 크게 당황했다. 4년 가깝게 납부했던 수백 만원을 한 번에 날리게 된 상황에 처했던 것이다.

 

A씨는 지난 2007년 부모 명의로 한 상조업체의 600만원짜리 상품에 가입, 2011년까지 47개월간 564만원을 납부했다.

 

그리고 얼마 후 갑자기 'H상조'라는 업체가 이 업체를 인수했다는 사실을 알리며 회원증서를 보내왔다. A씨는 고객정보가 일언 반구도 없이 이관됐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동안 불입해 온 금액은 행사시에 모두 인정한다'는 문구를 보고 전과 같이 나머지 3회분 36만원을 H상조에 납부했다.

 

그러나 급하게 돈이 필요했던 A씨가 상조 계약을 해제하려고 하니 H상조는 단칼에 거절했다. H상조는 '회원을 이관 받아 서비스를 지속하고 있지만 원래 업체로부터 어떤 대가도 받은 것이 없다"며 자신들이 직접 납부 받은 36만원의 일부만 돌려줄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하지만 564만원을 받은 업체는 이미 잠적한 상태. A씨는 "가입을 권할 때는 감언이설로 유혹해놓고, 해약하려고 하니 모르쇠로 일관한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결국 A씨는 해약환급금을 돌려받기 위해 한국소비자단제협의회에 조정신청을 했다.

 

 

고객 돈 '먹튀 업체' 기승

 

A씨처럼 경조사에 대비하기 위해 쌈짓돈을 상조회사에 불입하다가 해약할 때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법에도 없는 복잡한 약관을 들이대거나 폐업을 하고 잠적하는 등 이른바 '먹튀'가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상조계약으로 인한 피해구제 접수 건수는 2008년 234건에서 지난해 719건으로 3배 이상 급증했다.

 

피해유형은 무척 다양하다. 계약해제 시 각종 서류와 신분증 사본, 인감증명서까지 제출토록 요구해 불편을 끼치는가 하면 납입금이체가 밀렸다는 이유를 대면서 계약을 무효화시키고 해약환급금 지급을 거부키도 했다. 심지어 일방적으로 폐업한 뒤 버티는 곳도 많다.

 

최근에는 먹튀 방식이 진화했다. 변칙적인 회원이관 수법으로 인한 피해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법의 허점을 노린 교묘한 방식이다. 경영난을 겪고 있는 업체가 고객명단을 다른 회사에 넘기고 폐업한 후 고객이 계약해지를 원하면 양쪽 업체 모두 해약환급금 지급을 거부하는 방식이다.

 

현행 할부거래법에 따르면 다른 회사의 영업을 넘겨받은 업체는 고객이 해약을 원할 경우 그동안 불입한 돈의 최대 85%까지 돌려줄 책임이 있다. 하지만 '고객'을 넘겨받은 경우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정이 없다.

 

이를 악용해 상조업체가 사업인수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회원이관 계약만 맺은 후 해약환급금 지급 책임을 회피하게 되면 고객은 어디에서도 돈을 받을 수가 없다.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개인정보 침해도 일어난다. 일부 업체들은 회원이관 과정에서 고객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연락처, 계좌번호 등 개인정보를 통째로 주고받으면서 고객에게 이를 사후 통보하거나 서면이 아닌 문자, 전화로 확인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객의 동의 없는 무단 회원이관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다.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정재찬)는 소비자보호 지침을 통해 상조업체가 회원을 이관할 때 충분한 설명 후 당사자 동의를 받도록 권고하고 있다. 회원을 인수한 업체 역시 회원에게 해약환급금 지급 등 모든 책임을 이행토록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가이드라인은 법적 구속력이 없어서 무용지물이다.

 

소비자단체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해약환급금 피해로 1372 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상담건수는 2435건이다. 이중 단순 환급거부가 1469건, 회원이관이 732건으로 뒤를 이었다. 그 다음은 부도, 폐업(216건)이었다.

 

 

고객 돈 물쓰듯 쓰기도…상조업 관리감독 기관도 없어

 

이처럼 고객 돈 먹튀 업체가 기승을 부려 상조업계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헤매는 가운데 고객돈을 물 쓰듯 쓰는 업체들도 많다.

 

공정위에 따르면 상조업계 전체의 자산대비 부채비율은 19.0%다. 2010년의 135%에 비하면 조금 개선됐지만 여전히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완전자본잠식 업체가 업계 절반에 가까운 136개사가 되는 위험한 상태다. 그럼에도 업계 규모가 계속 커진 것은 관련법에 구멍이 뚫려있기 때문이다.

 

상조는 별도 업종등록이 되어 있지 않은 '선불식 할부거래업'이다. 소비자가 꾸준히 돈을 납입하면 불상사가 생길 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보험업과 유사하지만 보험업 같은 별도의 회계처리기준이 없다. 할부거래법상 상조업체들은 매달 회원으로부터 선수금을 받지만 회계상 부채로 인식한다. 영업을 할수록 빚이 쌓여감에도 실질적으로 만질 수 있는 돈이 많아 유혹이 크다. 특히 선수금 보전이 의무화되기 전에는 들어오는 돈 전부가 회사의 '쌈짓돈'처럼 쓸 수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더구나 경조사를 치를 때는 부의금, 축의금 등 현금으로 거래가 이뤄지다 보니 현금흐름이 재무제표에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수입과 지출을 얼마든지 속일 수 있다는 상황인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많은 업체들이 회계상 부채인 선수금을 쌈짓돈처럼 여기고 마음대로 빼 쓰거나 무리하게 영업을 확대, 결국 해약환급금을 내지 못할 지경까지 갔다"면서 "일정 규모 이상의 업체에 대해서는 외부감사가 의무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관리는 기약이 없다. 지난 2007년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위, 공정위는 상조업 주무부처에 관한 논의를 벌였으나 서로 미룬 바 있다. 관계부처들이 '뜨거운 감자'인 상조업을 누가 책임질 것이냐를 놓고 눈치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공정위 할부거래과에서 상조업 전담부서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하지만 부서 규모도 작은데다, 상조업 전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실정이다. 게다가 공정위 내부에서도 할부거래과는 한직으로 인식돼 공무원들이 기피하고 있다. 공정위는 거래행위만을 규제하는 기관 특성 때문에 경영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권한조차 없다.

 

 

재무상태 속이거나 자료 미 제출 업체 많아

 

정부는 2010년부터 상조소비자의 피해보상을 위해 업체들이 고객들로부터 선수금을 받으면 그 일부를 의무적으로 보전토록 하고 있다. 이를 법정선수금 보전비율이라 부르는데, 모든 업체에 50% 보전비율을 이행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에 보전비율을 맞춘 것으로 자료를 제출한 업체들의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최근 영세업체들의 회원을 이관하는 방식으로 몸집을 불리고 있는 H상조의 경우 실제 선수금 보전비율이 기준에 못 미쳤음에도 이를 속여 공정위에 제출한 사실이 드러나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공정위에 따르면 올해 4월 현재 259개의 상조업체가 있다. 전체 가입자 수는 약 378만 명이며, 총 선수금 규모는 약 3조2483억원이다. 업체수는 307개('12년5월)였다가 297개('13년5월)→293개('13년9월)→259개('14년4월)로 꾸준히 줄어들었다. 2014년도에는 2013년 하반기 대비 34개업체(11.6%)가 감소한 것을 볼 수 있다. 2013년에 특히 문을 닫는 업체가 많은 이유는 '법정선수금 보전비율'을 맞추지 못한 곳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상조뉴스  김규빈 기자>